[새벽 편지] 사랑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더라 [발행인/ 시인·소설가 김경홍] 1
사랑은 먼 데 있는 것이 아니더라
살다보니 그렇더라 사랑은 바로 눈앞에 있는 것이더라 사랑은 장롱 속에 들여놓을 게 아니더라 꺼내놓고 물 쓰듯 써야 하는 게 사랑이더라
물 젖은 아내의 손을 꼬옥 잡아주고 퇴근한 남편의 등을 다소곳이 다독여 주는 게 사랑이더라 살면 얼마를 더 살고 누리면 얼마를 더 누리겠나 사랑은 아주 가까이 있는 것이더라
마시고 싶은 술을 덜 마시고 보고 싶은 텔레비전을 덜 보면서 밥상이나 찻잔을 마주하고 앉아 혹은 둘이 턱을 괴고 앉아 따스하게 귀 기울여 주는 게 사랑이더라
살다보니 그렇더라 잘 살지는 못했지만 살아보니 사랑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더라 많은 돈은 없지만 있는 만큼 나눠 갖고 불편할지언정 오순도순 자리를 펴고 앉아 지내는 게 사랑이더라
외로워 마라 성내지도 마라 사랑은 멀리 있는 게 아니더라 그러므로 가난하다고 푸념마라 사랑은 아주 가까이 있는 이웃사촌과 같은 것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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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게 아주 거창한 것인 줄 알았네 마주 앉아 사랑을 속삭이기보다 진실과 정의를 노래하고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사랑을 얘기하기보다 존재와 실존을 논하게 게 삶인 줄 알았네
아픈 이웃을 다독이기보다 가로수 울창한 숲을 가며 고독을 씹고 식기통에 쌓인 그릇을 씻기보다 먼 산을 품어안아 원대한 꿈을 꾸는 게 삶인 줄 알았네
살아보니 그게 아니더라 삶은 저 멀리 놓여있는 거대한 풍경이 아니더라 사랑하는 사람의 어깨를 손바닥이 닳도록 다독여 주고 먼저 일어나 식기통의 그릇을 씻어주는 게 잘사는 것이더라
마룻바닥에 쌓인 먼지를 닦아주고 빨랫줄에 널린 옷가지를 거둬들이는 게 아주 소중한 삶이더라
내가 나의 일에 갇혀 스스로 감동하기보다 남이 나로 하여금 감동하게 하는 게 삶이더라 내 세계에 갇혀 눈물을 흘리기보다 내 가슴이 흐르고 흘러 그대를 적시는 게 삶이더라
거창하게 사랑을 논하기보다 힘들고 지친 그대에게 곱게 다가앉아 속삭여 주는 게 삶이더라 산다는 것은 멀리 있는 아주 높이 있는 철학이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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