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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편지] 낮은 산에 집착하면 높은 산에 오를 수 없다
2023년 09월 18일 [K문화타임즈]


↑↑ 해풍으로 곱게 물든 강화석모도의 황금빛 가을산
[사진 출처] koreasanha.net


[발행인 = 김경홍] 황혼의 길을 가는 A씨의 얘기다.
유년은 불행했다. 꿈은 위대한 작가였다. 불행한 삶들의 얘기를 작품 속에서 승화하려는 바람이 작가의 길을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고백하면 도피처였다.

쾌나 공부를 했던 고교 1년 시절의 일화다. 학기 초 담임이 진로 상담을 했다. 장래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자, 법조인이라고 그랬다. 사춘기 시절인 당시, 담임의 조언은 충격이었다.
‘연좌제 때문에 꿈도 꾸지 마라’
그날 오후 A씨는 학교를 뛰쳐나와 술을 마셨고, 담배를 피웠다. 유채꽃이 꽃봉오리를 터뜨리던 봄날의 사연이다.

이후 A씨는 공부와 담을 쌓았다. 어린 나이에 헤겔과 칸트를 좋아했다. 이후에는 쇼펜하우어를 따라 들어가 염세철학과 만났다. 종종 자살 시도를 했고, 술 속에서 작품을 썼다.
그 속에서 담임을 증오했고, 그를 길러낸 가족과 세상을 미워했다. 온전한 작품이 탄생할 리 만무했다.

황혼의 길을 가는 A씨로부터 많은 이들이 떠났다. 가족마저도 등을 돌렸다.
꾸부정한 A씨의 어깨 위로 노을이 밀려들었다.

세상이 어수선하다. 티브이를 켜도 유튜뷰를 들여다봐도, 싸움질이다. 모든 이들의 시선은 가야 할 길에 있지 않고, 걸어온 길에 쏠려있다. 지난 온 길의 숲속으로 걸어 들어가 공격할 재료들을 찾고, 무기를 만들어 낸다.
정치권, 심지어 지방의 작은 정부들도 그렇다. 공격할 무기를 만들어내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마음이 닫혀 있으니, 소통이 없고, 양보와 용서의 미덕이 놓일 자리에 미움과 증오가 꽈리를 틀고 있으니, 오로지 자신만의 세상이다.

권력은 그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힘이다. 그러므로 그 힘으로 쟁기질을 하고 씨앗을 뿌리고 거둬들인 결실을 국민에게 갇다 바쳐야 한다.
하지만 밭에서 일을 해야 할 권력이 국민 위에서 위세를 부리고 있다. 곳곳마다 항명이다.

황혼의 길을 가는 A씨의 어깨가 늘어져 있다. 과거사들을 술상과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죽이느니 살리느니’ 고함을 질러대며 펜을 휘갈겨 대댄 날들이 남긴 것은 하룻밤이 지나도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은 고독이다. 온당하지 않은 고독은 생의 종점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이다.

머지않아 한때의 권력은 황혼의 길을 가게 되는 법이다. 그 권력은 끌어올린 과거사를 무기로 만들어 상대를 공격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 무기는 영원한 소유물이 아니다. 무기를 손에서 놓게 되는 순간 한 때의 권력은 고독하고 외로운 황혼의 길을 걸어 들어가 역사의 이단자가 되는 법이다.

황혼의 길을 가는 A씨와 동행하는 것은 늙음이다. 늙음이 달려들어 신체를 갉아 먹는다. 주저앉은 낮은 산, 한때 그가 오르고자 했던 높은 산이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후회가 바람을 일으키며 그를 드러눕게 한다.
고교 2년 시절, ‘법조인으로 갈 수 없다’던 담임과의 과거사에 매달려 술판을 벌이고, 증오와 미움의 작품을 써 내린 삶.

낮은 산에 집착하면 놓은 산에 오를 수 없는 법이다. 과거에 집착하면 미래가 없고, 증오에 집착하면 소통과 화합을 이룰 수 없는 법이다. 요즘 정치권도 이러한 명제 앞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A씨의 인생사 속에서 2023년을 걸어가는 이 나라 정치권의 뒷모습이 선연하게 떠오르는 이유가 뭘까.
높은 산, 햇살 밝은 바위에 가을 이파리들이 무수하게 쌓이고 있다. 얼싸안은 웃음들이 아름다워야 할 그 삶의 광장이 텅 비어 있으니 안타깝다.

며칠 전 한 때 중앙 무대에서 정치를 하던 선배를 만났다.
세월이 볼살을 갉아먹은 얼굴에 이맛살이 파도쳐 댔다.
“젊은 날 말일세, 거머쥔 권력이 영원할 줄 착각했네. 만인들이 꿈을 꾸는 높은 산을 오르려고 하기보다 상대를 걷어차는데 혈안이 되기만 했네. 돌아보면 늘 낮은 산에 집착해 온 삶이었어. 많은 이들과 정상에서 얼싸안고 춤을 추려던 꿈은 꿈이었을 뿐이었네.”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114dd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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