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탑을 가운데 둔 아버지 텃밭에서 자란 무 속에는 천 년 전 탑돌이 하던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어 있다 겨우내 탑 그늘에 묻어 두었던 한 자루 무를 캐내어 쏟아붓는데 무의 흰 이마가 시린 무릎을 쿡쿡 들이받는다 돌을 쌓아 탑이 되었듯 쏟아 놓으니 무가 탑 높이다 갈아두었던 칼날 들이대자 무는 겨울 이야기 들려주는데 뼛속까지 스며든 바람집을 어쩌나! 서늘한 기억 껴안은 어머니 바람 든 무는 아무런 쓸 곳조차 없다셨지만 탑이 켜둔 등불의 결 따라 무 썰어 깍두기를 담근다 깍둑깍둑 토막 낸 무 더미에 내가 버무린 것은 어머니의 저녁노을 고향 떠나지 않겠다던 어머니가 봄바람보다 먼저 무너진 탑 아래서 서성거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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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복희 시인 [사진 제공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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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 출신으로 구미에 터를 잡은 시인이다. 2010년 ‘문학시대’에 수필, 2022년 계간‘시에’시가 당선되면서 한국 문단에 명함 (수필가·시인)을 내밀었다.
‘오래된 거미집’은 이 시인의 첫 시집이다. 릴리시즘의 정수를 잘 보여준다는 평을 얻고 있는 시인의 작품‘ 오래된 거미집’을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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