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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굴곡의 상주 정치사] 상주 임이자 · 구미 구자근 국회의원은 닮은 꼴 ... 입지전적의 시의원 출신 경북대표 정치인
△임이자 의원⇢ 비례대표 경기 안산시의원, 비례대표 국회의원, 상주(문경) 지역구 국회의원, 국민의힘 경북도당 위원장
△구자근 의원⇢ 구미시의원, 경북도의원, 구미갑 지역구 국회의원, 국민의힘 당 대표 비서실장
2023년 04월 17일 [K문화타임즈]

경북 최대 인구를 자랑하던 상주시, 되돌아본 70년 정치사
1965년 26만 5천 명으로 경북 최대 인구
2019년 인구 10만 시대 사수 실패
18명 국회의원 배출
이상배 3선, 백남식•김정근•김상구 재선
1~5대 상주군 정수 2명, 6대~8대 상주시 •상주군 일원 정수 1명
9대~12대 김천시 •금릉군 •상주군 정수 2명
13대~19대 상주시 정수 1명
20대 상주•의성• 청송•군위 정수 1명
21대 상주•문경 정수 1명
20대 재•보궐 선거 결과 70년 상주 정치사상 최초 지역출신 국회의원 배출 실패, 의성 출신 김재원 당선



↑↑ 상주시 전경.
[사진 출처= 상주시]


[k문화타임즈 = 김경홍 기자] 경북 구미와 상주 정치사 속으로 들어가면 닮은 꼴이 많다. 구미에 당대를 호령했던 김윤환 박세직 의원이 있다면, 상주에는 경북지사와 총무처 장관, 서울시장을 지낸 이상배 의원과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80년대 정치를 풍미하던 전두환 대통령의 동서인 김상구 의원이 있다.
2000년대 정치로 옮아오면 상주의 임이자 의원과 구미의 구자근 의원이 닮은 꼴이다.
40대 초반 경기 안산시 비례대표 시의원으로 출발한 임이자 의원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에 이어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국민의힘 경북도당 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 구미의 구자근 의원은 시의원과 도의원에 이어 지역구 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국민의힘 당 대표 비서실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 임이자 의원

한 도시의 발전 정도는 인구의 증감과 불가분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경북 도내에서 가장 많이 인구가 감소한 곳이 바로 상주와 김천이다. 인구의 증감은 특히 지역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기준이 된다는 점에서 경제, 정치 분야에서 희비를 가른다.

1965년 상주군은 26만 5천 명이었고, 이웃해 있는 김천시는 시로 승격이 된 1949년 금릉군을 포함해 19만 명에 육박한 데 이어 1960년대 들어서면서 21만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금릉군과 도농 통합을 한 김천시는 2019년 현재 15만 명을 밑돌고 있다. 상주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1965년 26만 5천 명이던 인구는 50여 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해 왔다. 급기야 2019년 1월 말 10만 3,809명으로 내려앉은 인구가 그해 2월 8일에는 9만 9,986명으로 10만 시대를 사수하는 데 실패했다. 공무원들은 인구 10만을 지키지 못한 자성의 의미를 담은 검정 넥타이 차림으로 출근할 만큼 상주의 현실은 격세지감을 절감할 정도다.

인구 감소 추세는 지역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에도 직격탄으로 작용했다.
1948년 5월 31일 제1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1960년 7월 29일 제5대 선거까지 2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해 온 상주는 1963년 12월 17일 제6대부터 1971년 7월 1일 제8대까지는 1명, 중선거구제로 바뀐 1973년 3월 12일 제9대부터 1985년 4월 11일 제12대에는 김천시와 금릉군, 상주군 일원에서 각 2명, 상주읍이 시로 승격되면서 상주시와 상주군으로 분리된 1988년 5월 30일 제13대부터 1993년 5월 10일 제14대까지는 상주시와 상주군에서 1명을 선출했다.

이어 상주군이 상주시에 통합된 1996년 5월 30일 15대부터 2012년 5월 20일 19대까지는 상주시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하면서 소위 ‘상주 자존’을 지켰다.
그러나 2016년 실시한 국회의원 선거는 상주시, 군위군, 의성군, 청송군 일원에서 1명을 선출했다. 그나마 시민들은 상주 출신 김종태 의원이 당선되면서 위로로 삼았으나 선거법 위반에 따른 의원직 상실로 2017년 4월 13일 실시한 보궐선거에서는 의성 출신 김재원 의원에게 뺏지를 넘겨야 했다.
이어 2020년 제21대 선거부터는 상주와 문경 등 통합 선거구에서 상주 출신 임이자 의원을 당선시키면서 무너졌던 자존심을 회복했다.

상주의 정치는 이처럼 경북 경제사와 한국 현대정치사의 단편을 모두 담고 있다. 게다가 지난 2019년 8월 8일 대구고법 형사1부가 2018년 지방선거가 끝난 뒤 선거캠프 관계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기소된 황천모 상주 시장에 대한 항소심에서 피고인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한 데 이어 대법에서도 형량이 유지되면서 시장직이 박탈되자, 상주 시민들은 또 한 번 허탈해야만 했다.
 
↑↑ 이상배 전 의원


1대부터 21대까지 상주가 배출한 국회의원은 19명이다. 이 중 5명 의원이 무소속 출신이라는 점이 관전포인트이다. 진보와 보수가 극명하게 갈라선 지금의 경북정치의 특성에 비춰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 출신 이상배 의원은 3선, 대한촉성국민회와 무소속 출신의 백남식 의원, 무소속과 민주공화당을 오간 김정근 의원, 민정당과 무소속을 오간 김상구 의원은 재선이다.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은 재선에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직을 박탈당했다.

◇제1대 (1948년 5월 31일-1950년 5월 30일)
*1대부터 5대까지는 상주 갑구와 상주 을구에서 각각 1명을 선출했다.
상주군 갑구에서는 36.79%를 얻은 대한촉성국민회 한엄회 후보가 34.83%로 추격전을 벌인 무소속 박성우 후보를 간발의 차로 따돌리며 당선됐다.
상주군 을구에서는 대한노동총연맹 전진한 후보가 75.44%를 얻으면서 24.56%를 얻는 데 그친 무소속 백남식 후보를 누르고 압승했다.

◇제2대(1950년 5월 31일-1954년 5월 30일)
상주군 갑구에서는 11명의 후보자 중 무소속이 10명, 정당 소속이 1명에 불과했다. 27.3%를 얻은 무소속 박성우 후보가 17.5%를 얻은 무소속 조음면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상주군 을구에서도 13명이 후보가 등록을 마쳤다, 이 중 무소속은 10명, 정당 소속은 3명에 불과했다.
1대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차점 낙선한 백남식 후보가 대한촉성국민회 소속으로 출마해 17.5%를 얻으면서 9.97%를 얻은 무소속 권태휴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10%대의 득표자 당선은 혼탁했던 정치사의 단면이기도 했다.

◇제3대 (1954년 5월 31일 -1958년 5월 30일)
상주 갑에서는 12명이 등록을 마쳤다. 23.94%를 얻은 무소속 김달호 후보가 22.89%를 얻은 자유당 석휘관 후보를 박빙으로 눌렀다.
상주 을에서는 무소속 백남식 후보가 23.85%를 얻으면서 20.02%를 얻은 무소속 김정근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4대 (1958년 5월  31일-1960년 7월 28일)

상주 갑구에서는 자유당 조광휘 후보가 44.42%로 압승했으며, 상주 을에서는 43.62%를 얻은 무소속 김정근 후보가 33.06%를 얻는 데 그친 자유당 백남식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5대(1960년 7월 29일-1961년 5월 16일)
상주 갑구에서는 민주당 홍정표 후보가 47.29%를 얻으면서 33.34%를 얻는 데 그친 김달호 후보를 눌렀다.
상주 을구에서는 무소속 김기영 후보가 26.25%를 얻어 당선됐다. 차점자는 재선에 도전한 무소속 김정근 후보로 24.45%였다.

◇6대(1963.12월 17일- 1967년 6월 30일)
*6대부터 8대까지는 상주 일원에서 1명의 의원을 선출했다.
6대부터 8대까지 내리 민주공화당 후보가 당선됐다, 이전 선거와는 달리 이 당시부터 정당정치가 자리를 잡으면서 무소속 후보가 줄어들면서 정당 후보 간 대결로 압축됐다.
당시 선거에서는 35.49%를 얻은 민주공화당 김정근 후보가 19.43%를 얻은 자유민주당 김기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7대(1967년 3월 1일-1971년 6월 30일)
역시 민주공화당의 승리였다. 김천수 후보가 56.71%를 얻으면서 25.64%에 그친 신민당 홍정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8대 (1971년 7월 1일-1972년 10월 17일)
6대부터 8대까지는 민주공화당 후보가 내리 당선됐다. 65.80%를 얻은 김인 후보가 17.83%를 얻는 데 그친 국민당 임재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9대 총선 (1973년 3월 12일- 1979년 3월 11일)
*9대부터 12대까지는 김천시, 금릉군, 상주군에서 2명을 정원으로 하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다.
7명의 후보가 나선 가운데 무소속으로 상주 출신인 김윤하 후보가 4만 6,980 (28.6%), 김천 출신의 민주공화당 백남억 후보가 4만 1,943표 (25.5%)로 1, 2위를 차지하면서 당선됐다.
이외에 신민당 이기한 후보는 2만 4,039표를 얻으며 선전했고, 민주통일당 조필호, 무소속 박준무, 무소속 박희동, 무소속 홍성표 후보도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뛰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제10대 총선 (1979년 3월 12일- 1980년 10월 27일)
전두환 정권의 쿠데타로 임기가 1년 6월에 그쳐야 했다. 김천, 금릉, 상주 일원에서 2명을 선출했다.
당시 선거에서는 6~9대에 걸쳐 4선을 고수해온 김천출신 백남억 후보가 박정수 후보에게 패했다. 결국 백 의원이 지역 정치를 떠나면서 박정수 의원 시대를 예고했다. 상주 출신 김윤하 의원 역시 패배해 상주 정치를 탈바꿈시켰다.

7명의 후보가 나섰다. 무소속 김천 출신의 박정수 후보가 4만 3,319표(24%), 상주 출신의 무소속 정휘동 후보가 4만 2,477(23.5%)로 1, 2위를 차지하면서 당선됐다.
민주공화당 김천의 백남억 후보는 3만 5,200표, 무소속 상주의 김윤하 후보 3만 2,126표, 신민당 이기한 후보는 1만 5,113표를 얻었다. 이외에도 민주통일당 임재영, 무소속 이재옥 후보도 선전했다.

▷제11대 총선 (1981년 4월 11일- 1985년 4월 10일)
7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10대에 이어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천 출신 박정수 후보가 4만 9,922표(28.2%), 민정당 소속으로 상주 출신의 정휘동 후보가 4만 6,093표(26.1%)를 얻으면서 1, 2위로 당선됐다. 민주공화당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민정당 시대가 열리던 때였다.
이외에도 민권당 정정문, 민주한국당 한봉수, 무소속 이재옥, 무소속 김종섭, 무소속 김인 후보가 나섰다.

▷제12대 총선 (1985년 4월 31일- 1988년 5월 29일)
3명의 후보가 나선 선거에서 상주 출신으로 전두환 대통령의 동서인 상주 출신 민정당 김상구 후보가 9만 6,567표(49.3%), 3수에 도전한 상주 추신의 신한민주당 이재옥 후보가 3만 3,504표(17%)를 얻어 1, 2위로 당선됐다. 무소속을 고집하면서 3선을 겨냥해온 박정수 후보는 3만 718표를 얻는 데 그치면서 쓴잔을 마셔야 했다.

당시 선거에서는 상주 출신 2명의 후보 모두가 당선되면서 상주의 위력을 입증했다.
이외에도 국민당 김한선 후보가 2만 3,349표를 얻었으며, 민한당 이기한 후보도 선전했다.

◇제13대 (1988년 5월 30일-1992년 5월 29일)
*13대와 14대 선거에서는 상주시와 상주군 일원에서 1명을 선출했다.
민정당 김근수 의원이 51.92%를 얻어 22.54%를 얻은 정휘동 후보를 눌렀다.

◇제14대 (1992년 5월 30일-1996년 5월 2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서로서 민정당 출신의 김상구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50.04%를 얻는 저력을 발휘했다. 민주자유당 김근수 후보는 34.63%였다.


◇제15대(1996년 5월 30일-2000년 5월 29일)

*제15대부터 19대까지는 상주군이 통합되면서 상주시에서 1명을 선출했다.
15대부터 17대까지는 이상배 의원이 내리 당선되면서 3선 의원이 됐다.
경기고와 서울법대를 나온 그는 자유한국당 상임고문, 제12대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위원장. 국회 정치관계법개정특별위원회 위원장, 국회 농림해양수산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정책위의장, 서울특별시장, 총무처 장관, 환경청장, 경상북도지사 등의 요직을 거쳤다.
상주가 낳은 걸출한 정치인으로 구미의 김윤환, 박세직, 박재홍 의원과 비교된다.

제15대 선거에 처녀 출전한 신한국당 소속의 이상배 후보는 35.37%를 얻으면서 29.74%를 얻은 자유민주연합 이재호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제16대(2000년 5월30일 -2004년 5월29일)

하지만 16대에는 한나라당 후보로 출전한 이상배 후보가 54.75%를 얻으면서 두 번째 도전한 자유민주연합 이재훈 후보를 크게 앞질렀다. 이 후보는 31.15%를 득표했다.

◇제17대(2004년 5월 30일-2008년 5월 29일)
17대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소속으로 나선 이상배 후보가 70.80%를 얻으면서 열린우리당 성백영 후보를 크게 눌렀다. 성 후보는 29.39%를 획득했다. 성백영 후보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민선 상주시장을 역임했다.

◇제18대(2008년 5월 30일-2012년 5월 29일)
2008년 총선을 앞두고 20일 만에 창당해 ‘살아서 돌아오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슬로건을 앞세운 친박연대는 지역구 6석과 비례 8석 등 14석, 친박 무소속연대가 12석을 차지했다. 친박을 표방한 후보 26명이 당선되는 이변을 연출했다.

경북에서는 친박연대 김일윤(경주), 친박 무소속연대 김태환(구미을), 이인기(성주, 고령, 성주), 성윤환(상주), 정해걸(의성, 군위, 청송) 후보 등 5명이 당선됐다.
대구는 친박연대 홍사덕, 박종근, 조원진 후보 등 3명, 친박무소속연대 이해봉 후보 1명 등 4명이 당선됐다. 특히 경북의 경우 15개 의석 중 5석을 차지하면서 9석을 차지한 한나라당을 위협했다.

당시 선거에서 친박연대 소속으로 출마한 성윤환 후보는 51.91%를 얻으면서 42.65%의 한나라당 손승태 후보를 눌렀다. 이웃해 있는 구미을 친박 무소속 김태환 후보와 동반 당선되면서 화제를 낳았다.

◇제19대(2012년 5월 30일-2016년 5월 29일)
새누리당 소속 김종태 후보가 60.60%를 얻으면서 27.32%를 얻은 무소속 정송 후보를 여유 있게 따돌렸다.

◇제20대(2016년 5월 30일-2020년 5월 29일)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해 온 상주는 20대 선거부터 군위, 의성, 청송과 통합선거구에 흡수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선거 결과 상주 출신 새누리당 김종태 의원이 77.65%를 얻고 압승하면서 상주시민을 안도시켰다. 차점자인 더불어민주당 김영태 후보는 27.32%를 얻었다.

통합선거구로 치른 선거였지만 상주출신이 당선되면서 잠시나마 안도하던 상주시민들에게 비운이 날아들었다. 김 의원이 선거법 의원으로 직을 상실한 것이다.

◇제20대 보궐선거
2017년 4월 12일 실시한 보궐선거에서는 의성 출신으로 자유한국당 소속의 김재원 후보가 당선됐다.
상주시민들은 70여 년 정치 역사상 처음으로 지역 출신 국회의원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했다.

 
↑↑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


◇제21대(2016년 5월 30일-2020년 5월 29일)
*상주시와 문경시 등 통합 선거구에서 1명 의원을 선출했다.
상주 출신 미래통합당 임이자 후보와 민주당 정용운 후보 등 4명이 나섰다.
선거 결과 6만 5,558표를 얻은 미래통합당 임이자 후보가 1만 8,282표를 얻은 민주당 정용운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20대 보궐선거에서 뺏겼던 ‘국회의원 없는 상주’시대를 극복한 선거로 평가된다.
이외에도 국가혁명배금당 이언우 1,202표, 무소속 이한성은 1만6,127표를 얻었다.

김경홍 siin0122@hanmail.net 기자  114dd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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