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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문화타임즈의‘우리의 얼 되찾기 운동’] 구미 지역 동네의 옛 이름을 찾아 (5) 광평동
김영민 전 구미•대구 YMCA 사무총장 / k문화타임즈 공동 고문 겸 논설위원장
2022년 09월 24일 [K문화타임즈]

늘 비판과 격려를 해 주시는 네티즌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얼 되찾기의 가치관을 지향하는 k문화타임즈가‘우리의 얼 되찾기의 운동’에 나섭니다.
그 일환으로 김영민 필진이‘구미 지역 동네의 옛 이름을 찾아서’, 송기남 필진이 우리나라 항일 운동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 제주항일 운동사’를 각각 연재합니다.
[편집자]

 




◇김영민 k문화타임즈 고문 겸 논설위원장
대표적인 시민운동가입니다.
구미 YMCA, 대구 YMCA 사무총장을 역임했습니다.
잊혀진 구미의 지명 살리기와 관련한 칼럼을 연재합니다.




◇송기남 K문화타임즈 논설위원
제주 4•3 민주 항쟁과 제주 생태(자연, 인문) 분야에서 오랜 활동을 해 오신 제주지역의 대표적인 시민사회 활동가입니다.
제주항일 운동 칼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구미 지역 동네의 옛 이름을 찾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구미를 느끼고 살아왔는지 각 동의 이름을 중심으로 그 유래와 내용을 통해서 살펴본다.
<필자>

우리 동네 이야기 6. 광평동
한국지명유래집 경상 편 지명(2011. 12)에는‘과거 마을 앞에 펼쳐진 넓은 들 (廣坪)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타나 있고, [한국지명총람]에는 "다송동과 화신동을 병합하여 광평동이라 해서 구미면에 편입됨"이라는 기록이 있어 과거 이 일대에 분포하던 '다송(多松)'과 '화신(花新)'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의 동은 조선 후기 하구미 면 지역이었다.

 
↑↑ 선산 하구미면 광평지도 ( 한국지명유래집 경상 편 지명 2011. 12.)
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예로부터‘마을 앞에 넓은 들이 있어 광평’이라고 하였다. 또‘마을 양쪽 산에 소나무가 울창하여 산솔’이라고도 하였다고 해‘소나무가 많은 넓은 들이 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자연 마을로는‘약 400년 전 전주이씨가 자리 잡은 마을, 주위에 소나무가 많아 다송(多松)’으로 불리던 지역, 또‘약 300년 전 전주이씨가 터를 잡아 형성된 마을, 살구나무가 많아 살구꽃이 아름답게 피어 붙여진 이름의 화신(花新)’ 혹은‘새롭게 생긴 마을이라 하여 새터’라고 불렀다고 전하는 자연 마을들이 있었으나 1978년 2월 15일 구미시로 승격함에 따라 광평동이 되면서 이 자연마을 들에는 공업 단지 조성과 더불어 코오롱 사택이 들어섰다.


↑↑ 1976.9. 국내 총수출의 10% 차지를 기념하는 높이 40m의 수출탑을 건립했다(구미 수출공단, 1991.재인용)
황진태 박배균 공저의 논문 [구미공단 형성의 다중 스케일적 과정에 대한 연구,:제1공단 조성과정을 사례 중심으로]에 의하면 구미의 수출에 대한 국가적 스케일의 중심 사고방식은 시인 박목월의 시(구미공단/1974)에서 나타나듯이 ‘쓸모없는 낙동강 변 350만 평을......조국 근대화의 고동/ 바꿔놓은 지도위에 / 찬란한 태양이 /영원히 빛나리라’처럼 구미를 국가 경제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경향신문 1987.4.28., 구미 수출산업공단 1991, 101-102 재인용)

 
↑↑ 2022년, 구미의 수출탑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로 환경으로 공단지역과 시내를 연결하는 중심이 되고 있다

그리하여 시인의 시각은 1976년 9월 구미수출산업의 탑으로 나타나게 되었고, 구미를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러야 할 곳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저녁 시간 경부고속도로상에서 구미 인근에 왔을 떄 볼 수 있는 파고라와 증강현실은 내일의 구미를 약속한다.

 

 

↑↑ 50주년 기념

↑↑ 구미의 미래, 인류릐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구미 수출탑

김미자 기자 cloverail@hanmail.net 기자  114dd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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