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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아하 ! 마냥 울고만 싶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 제주 4,3 (3) 버려진 인권 사람사냥
2022년 04월 23일 [K문화타임즈]


송기남 K문화타임즈 논설위원이 한국 현대사의 비극 제주 사삼 민주 항쟁을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 주민들이 산속에 도피생활을 할 당시 사용했던 놋숟가락과 유물들(사진 제공 = 송기남 논설위원]


[송기남 = k문화타임즈  논설위원] 토벌군들은 눈을 뒤집고 마을을 돌며 젊은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를 캐묻기 시작한다.
어디에 있는지 몰라도 죄가 되고 끌려가 죽은 가족이 있어도 죄가 되는 세상이었다.
마을의 젊은이들은 모두 의심의 대상이 되고 감시의 대상이다 보니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항쟁하다 죽으나 삶과 죽음이 함께 따라다녔다.
감시받으며 사느니 토굴로 피신해 들짐승처럼 사는 삶이 그나마 밤에라도 자유를 누리는 삶이라고 할 정도였다. 입산자의 가족이라고 잡아다가 고문을 하거나 죽임을 당하니 대식구가 살던 그 시절 가족 중에 단 한 사람만 없어져도 그냥 마을에 남아있을 수가 없게 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기서 죽으나 저기서 죽으나 하는 절망감은 결국 산으로 피신하게 한다.
1948년 가을로 접어들면서 미군정 당국은 제주섬(레드아일랜드)을 붉은 섬으로 단정 짓고 대대적인 초토화 작전을 감행한다. 해안선으로부터 산 쪽을 향해 반경 5킬로미터 밖에 있는 마을과 숨어 있는 사람들은 모조리 사살하고 불 지르라는 명령이엇다. 태워 죽이고 쏘아 죽이고 굶겨 죽이는 3포 작전이 감행된다.

다랑쉬굴에 은신해 있던 주민들을 집단 학살했던 경우를 돌아본다.
제주섬 동쪽 구좌읍 세화리에서 해발 170고지 중산간에는 다랑쉬오름 해발 382미터 아래 다랑쉬 마을 터가 있다.
1948년 11월 마을은 모두 군,경 토벌대에 의해 불 질러 태워지고 마을 주민들은 해안마을로 소개되어 이주해 간다. 아랫 마을에서도 종달리와 하도리 마을 사람들은 걸핏하면 경찰들이 찾아와서 산으로 도피했거나 식량을 공급한 사람이 있느냐고 닦달한다. 이런 일들이 잦아지면서 얼마 못 가 우리들 목숨도 끝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곳 마을이 사라진 다랑쉬 근처에 와서 자연동굴 속으로 숨어 살게 된다.

1948년 12월, 음력 11월 18일, 함덕리에 주둔했던 대대본부가 지휘하는 군인과 경찰들이 민보단을 앞세워 합동작전의 일환으로 수색 작전을 펼치면서 다랑쉬굴이 발각된다. 입구가 비좁은 동굴 속으로 군인들은 들어갈 수 없으니 동굴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며 나올 것을 명령한다. 주민들은 나가도 죽을 것을 알기 때문에 굴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버린다. 군인들은 마른 풀더미와 나뭇가지들을 모아다가 굴속으로 불을 지른다. 그리고 커다란 돌들을 굴려다가 입구를 봉쇄해 버린다.

다랑쉬굴 희생자는 아래와 같다.
강태용 34세, 고순환 27세, 박봉관 27세, 고태원 27세, 고순경 25세, 고두만 21세, 함명립 21세, 김진생 여 51세, 부성만 여 24세, 이재수 남 9세, 이처럼 9살의 어린아이부터 여성들을 포함한 11명의 마을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해 죽어간다.
한때 이들과 함께 은신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는 2003년 채정옥(81세)씨의 중언에 따르면 토벌대가 지나간 다음 날 굴속으로 돌아가 확인해 보았더니 굴 안에 차오르는 연기를 피하려고 땅바닥에 코를 박고 죽은 시신들과 돌 틈으로 코를 박고 죽은 시신들을 보았다고 했다.
이렇게 수습되지 못하고 굴속에 버려진 시신들은 40년 세월이 지난 1991년 한 사진작가가 우연한 기회에 증언을 듣고 어두운 굴속으로 들어가 시신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당시 제민일보와 4•3 연구소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1992년 4월 1일 11구의 시신이 공개된다. 그러나 정보기관과 행정 당국에서는 군경 토벌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잔인성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이를 은폐하기로 작정하고, 유가족들을 개별적으로 회유한다. 결국 1992년 5월 15일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 동굴 안에 버려진 시신들이 42년 지나 굴 밖으로 나왔으나 제대로 예를 갖추어 장례식도 못 치르고 화장돼 종달리 앞 바다에 뿌려지고 만다.
↑↑ 마을 주민들이 산속에 도피해 임시 거주했던 집터들 [사진 제공= 송기남 논설위원]


제주도와 제주 경찰 당국은 이렇게 시신들을 무덤도 없이 바다에 뿌리고는 굴 입구에 시멘트를 부어 바윗돌로 밀폐해 버린다.
잔인한 한국 현대사는 이렇게 불과 연기로 민간인을 죽여 굴속에 버렸다. 그리고 민간인들이 찾아낸 그 시신마저 무덤도 없이 바다에 버리게 했다. 이것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것이 미군정과 이승만 독재 정부에서 시작돼 김영삼 정부까지 일어났던 허울 좋은 인권의 나라 자화상이었다.
이 다랑쉬굴 학살사건이 세상에 알려짐으로써 제주에서 일어났던 4.3의 참상은 더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된다. <다음 호에 계속>


↑↑ 마을 주민들이 산속에 도피해 임시 거주했던 집터들 [사진 제공= 송기남 논설위원]



[필자 약력]
송기남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
전 제민일보 서귀포 지국장 역임
전 조천읍 농민회 회장 역임
현 제주 새별문학회 회원
(사) 곶자왈 사람 회원
현제 제주 생태, 역사문화 해설사로 활동 중
제주 사삼 김창수 선생 기념사업회 준비위원장
k문화타임즈 논설위원

김미자 goguma,naver.net 기자  114dd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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