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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정치는 김천, 경제는 구미‘...김천 송언석 의원 ’65년 중진시대‘ 주인공 되나
백남억 4선↠박정수 4선↠임인배 3선↠이철우 3선↠송언석 2선
2024년 03월 02일 [K문화타임즈]

낙동강의 기적으로 몸집 키운 산업도시 구미...정치는 약체
김봉환 3선↠박재홍 3선(비례 포함 4선)↠김윤환 3선(비례, 유정회 포함 5선)↠박세직 2선↠김성조 3선↠김태환 3선↠심학봉 초선↠장석춘 초선↠백승주 초선↠구자근 초선 / 김영식 초선

↑↑ 김천 혁신도시 전경.
[사진 출처 = 김천시]

4·10 총선이 3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국민의힘 후보 공천을 위한 여론조사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3선 가능성을 열어놓은 김천의 송언석 의원, 과연 그는 ’65년 중진시대‘를 개봉(?)할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김천은 6대(1963년)부터 21대(2020년)에 이르기까지 3, 4선이 정치사를 썼다. 6대부터 9대까지는 백남억이 내리 당선되면서 4선, 10대부터 11대, 12대를 건너뛴 13대와 14대까지는 박정수가 당선되면서 4선이 됐다.
김천과 상주를 아우르는 통합선거구로 치러진 12대에는 박정수 후보가 2명의 상주 후보(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서 김상구, 이재옥)에게 패하면서 김천은 출신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했다.

이어 15대부터 17대까지는 임인배 전 의원이 3선, 18대부터 20대까지는 이철우 경북지사가 3선을 지냈으며, 송언석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이철우 지사가 지방선거 출마로 의원직을 내놓으면서 발생한 보궐선거와 21대에서 당선되면서 재선 의원이 됐다.

구미는 3선을 지낸 김태환·김성조 전 의원을 끝으로 재선 의원 시대를 열지 못했다. 19대와 21대에는 심학봉, 백승주, 장석춘 전 의원이 초선으로 정치를 마감했으며, 지금의 초선 구자근, 김영식 의원은 재선을 겨냥하고 있다. 1963년 후 60년간 중진시대를 이어 온 김천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이웃한 구미에 국가공단이 들어서면서 시세가 위축됐지만 김천은 3,4선의 중진의원을 60여 년간 배출하면서 정치에 관한 한 자존을 지켰다. 몸집이 작은 중소도시인데도 2개의 KTX 역사 유치를 확정 짓는 등 구미보다 비교우위에 선 까닭은 사익보다 공익을 우선하는 중진의 중앙 정치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KTX와 혁신도시, 경북도청, 영남물류센터 등을 줄줄이 뺏긴 구미로선 부끄러운 정치사가 아닐 수 없다. 그 짐은 고스란히 등짝을 짓누르는 시민의 고통으로 작용하고 있다. 또 안타까운 정치사를 물려받은 현 시장과 국회의원, 지역 정치인들이 헤쳐 걷는 앞길에 암벽이 되고 있다.

[김천 정치, 돋보이는 인물들]

▷최연소, 지역신문 사장 출신
문종두 3대 의원은 37세에 당선됐다. 41세에 당선된 임인배 의원보다도 4년 빠른 나이에 등원안 문 의원은 일본중앙대학원을 수료하고 지역언론인 김천시보 사장을 지냈다. 지역언론 사장과 최연소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거머쥐는 기록을 남겼다.

▷중졸, 여성 국회의원
중졸 출신도 2명이나 됐다. 특히 중졸 여성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했다는 점은 당시 시대 상황에 비추어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주인공이 바로 김철안 의원이다. 원내 자유당 부인부장을 맡고 있던 김 의원은 47세, 중졸과 여성이라는 장애를 극복하고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재선의원의 이력을 쓴 이후 정계를 떠났다.

▷백남억 국회의원
구미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윤환, 박세직 의원이라면 김천 정치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백남억, 박정수 의원이다. 두 의원 모두 지역구 4선과 전국구 의원 등 5선을 지냈다.
2001년 유명을 달리한 백남억 의원은 1960년 민주당 소속으로 참의원에 선출돼 정계에 진출한 후 제3·4공화국 시절인 1963년부터 1979년까지 민주공화당 소속으로 6·7·8·9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참의원까지 포함하면 5선이다. 김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17년 동안 정치 활동을 하면서 김천 정치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력도 화려하다. 1963년 당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은 그는 당시 길재호,·김진만,·김성곤과 함께 이른바 '4인방'의 일원으로 민주공화당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1970년 당 의장서리에 오른 백 의원은 1973년 당무위원 겸 총재 상임고문을 지냈다
그러나 민주당 참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공화당에 입당, 6대부터 9대까지 국회의원을 지낸 백 의원은 1979년 치러진 10대 선거에서는 46세의 신진 박정수 의원에게 쓴잔을 마셔야 했다.

2명의 정원인 김천, 금릉, 상주 선거구에 출마한 백 의원은 3만 5,200표를 획득했다. 1위는 박정수 4만 3,319표, 2위 장휘동 4만 2,477표, 4위 김윤하 3만 2,126표였다.

▷박정수 국회의원
10대 총선에서 아메리칸 대학원 출신의 46세 박정수 후보는 4선의 백남억 의원을 누르면서 김천 정치사에 새로운 물꼬를 텄다. 그러나 4선 의원을 지낸 박 의원의 정치적 행보가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10대와 11대에 걸쳐 연거푸 무소속으로 당선된 박 의원은 1985년 실시된 제12대 선거에서는 쓴잔을 마셔야 했다.
2명이 정원인 김천, 금릉, 상주 선거구에 출마한 박 의원은 9만 5,657표를 획득한 전두환 대통령의 동서이면서 상주 출신인 김상구 의원과 3만 3,504표를 획득한 이재옥 의원에게 2천여 표차로 패했다, 당시 박 의원은 3만 718표를 획득했다. 12대 선거에서 김천은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했다.
그러나 13대, 14대 총선에서 연거푸 당선되면서 4선의 이력을 썼다. 이어 15대 국회에서는 국민회의에 입당, 전국구 의원에 당선되면서 5선 의원이 됐다.

연세대 정치학과 3학년이던 1953년 미국으로 건너가 조지타운대를 졸업한 데 이어 1965년 부인 이범준과 함께 미국 아메리칸 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유학파 엘리트 출신인 박 의원의 정치적 고향은 김종필 국무총리 보좌관이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정치적 거물인 백남억 후보를 누르면서 이름을 알린 박 의원은 1996년, 2002월드컵 유치에 전념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전국구 의원직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새정치국민회의에서 전국구 의원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입당, 부총재를 역임했다.

하지만 앞길은 순탄치 않았다. 1998년 3월 외교통상부 장관에 임명된 박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문화 개방 및 천황의 방한을 원하신다'는 발언과 서울 주재 러시아 대사관을 강제 추방하는 등의 행보로 정치적 상처를 입으면서 5개월 만에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한국 정치사의 한 페이지를 쓴 백남억 의원은 2003년 유명을 달리했다. 인생도 짧고 권력도 짧다는 엄연한 사실을 박 의원은 증명해 보였다.

▷임인배 국회의원
1963년부터 1996년까지 33년 동안 사실상 백남억, 박정수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김천 정치사는 새로운 길로 들어섰다. 1996년 4월 실시된 총선은 지역의 최대 관심사였다.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듯 후보군도 춘추전국이었다. 당시 실시된 총선에는 9명의 후보가 난립했다. 특히 한나라당 후보인 대검찰청 중수부 수사관 출신의 임인배 의원과 서울법대 출신으로서 법무부 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무소속 정해창 후보의 맞대결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선거 결과 임인배 후보는 3만 4,576표를 얻어 2만 9,831표를 얻은 정해창 후보를 4천 700여 차로 누르는 기염을 토했다. 임 의원이 당선되자 언론은 ' 수사관 출신이 법무부 장관 출신을 이겼다'는 유행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9명이 후보가 난립한 선거에서 A모 후보의 경우 296표를 얻는 데 그쳐 또 다른 화제를 낳기도 했다.
세간의 화제를 뿌리며 41세라는 젊은 나이에 등원한 임 의원은 3선과 국회 상임위원장에 오르는 등 출세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4선의 고지를 넘기는 쉽지 않았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18대 총선에 처음 출마한 이철우 현 지사는 김천시장 출신의 무소속 박팔용 시장과 맞붙으면서 세간이 관심을 집중시켰다. 초반에는 열세였으나 선거 후반으로 오면서 역전에 성공해 당선됐다. 이어 19대와 20대 총선에 당선되면서 3선의 입지를 다진 이 지사는 2018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해 경북도 지사에 당선됐다.
당시 김천여론 주도층 일각에선 선거 기간 중 친박 무소속 김태환 의원을 지원하기 위해 선산시장을 방문한 박 시장의 행보가 악재로 작용했다고도 했다.

김경홍 기자 siin0122@hanmail.net 기자  114dd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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